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문단 편집) === 뉘른베르크 시기 === 헤겔은 김나지움의 교장직을 맡으면서, 학생들에게 예비적인 철학 수업을 가르치는 교사 역할도 담당했다. 그는 학교가 특정 직업을 수행하기 위한 실용적인 훈련 기관이 되어선 안되며, 학교는 학생들이 스스로 방향을 잡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어, 그들이 보편적 교양인이 될 수 있겠끔 유도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가난한 학생들의 학업을 정부가 도와줘야 된다고 주장했고 이를 위해 노력했다.[* 헤겔은 매우 자세한 계획을 세우고 지속적으로 관련 인사들을 만나서 필요한 자금을 얻어, 빈민들을 위한 사범학교를 세웠다. 연말 보고서에서 헤겔은 "빈민 학교"를 설립하고 훈련받은 교사들을 그곳에 배치하여 아이들이 가장 좋고 새로운 방법으로 배울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테리 핀카드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 이제이북스, 2006, p.415)] 하지만 뉘른베르크의 김나지움[* 학교 명칭은 '에기디엔 김나지움'이었다.]은 학교의 기능을 거의 상실할 정도로 낙후되어 있었고 재정 상태는 엉망이었으며, 정부는 학교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데 인색했다. 심지어 학교 건물에는 화장실이 없었는데, 헤겔은 니트하머에게 학교 상황을 보고하면서 화장실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이것은 공공 교육의 새로운 차원이며, 나는 그 중요성을 이제야 깨달았네. 이를테면 교육에 있어서 엉덩이의 중요성을 말일세."[* 테리 핀카드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 이제이북스, 2006, p.365] 그러나 이 모든 현실적인 장애물들에도 불구하고 헤겔은 김나지움을 성공적으로 궤도에 올려놓아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다. 그리고 교장으로서의 성공은 헤겔에게 고위층 사회로 접근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그는 고위층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는 "박물관Museum"이라는 이름의 사교 모임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모임에서 헤겔은 명망높은 귀족가문인 폰 투허 가문의 사람을 만났고, 그 인연으로 만난 마리 엘레나 수잔나 폰 투허와 1811년 9월 15일에 결혼했다. 이 시기의 헤겔은 자신이 맡은 철학 수업에서 김나지움 학생들에게 논리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수업 내용과 그 동안의 생각들을 바탕으로 『논리의 학』 제1권을 1812년에, 제2권을 1813년에, 제3권을 1816년에 차례대로 출간했다. 헤겔에 따르면, 논리학은 모든 철학을 작동시키는 기초이면서 자기 자신을 자율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기획이다. 그러므로 그의 철학 체계의 핵심은 더 이상 『정신현상학』이 아니라 『논리의 학』이 차지하게 된다. 『논리의 학』에서 헤겔은, 사유와 존재를 "판단(또는 규정)"하기 이전의, 통일되고 근원적인 '의식'을 전제한다. 이른바 "순수한 앎"이다. 하지만 의미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 "판단(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사유 속에서 다양한 역설과 긴장들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즉각적으로 만들어 낸다. 한편 역설과 긴장을 만들어내는 각각의 판단들은 오직 더 큰 추론 속에서 유의미해지기 때문에, 보다 더 큰 추론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가장 큰 추론을 요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헤겔은 이를 "이성들의 공간" 또는 "이념(객관성)"이라 부른다. 이 "이성들의 공간"은 개별 판단에 의한 논리적 역설과 긴장을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큰 전체로서 다시 사유와 존재의 통일을 이루고 있으므로, 그것은 "주관적인 개념인 동시에 객체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이 이성은 거의 무한에 가까운 가장 큰 추론이므로, 이 이성 외부에 기준으로 존재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이성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스스로가 스스로를 정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증명된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정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개별적 판단이 비록 한계를 가지더라도 결국 우리 모두의 판단을 통해서만 우리 자신을 정립할 수밖에 없다는 말과 같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바뤼흐 스피노자|스피노자]]가 말했듯이 "모든 규정(판단)은 부정"이기에, 통일된 "이성들의 공간"에서 각기 부분으로 위치할 개인들이 그 자신의 "부정성"을 끊임없이 산출해야 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부정성"은 "스스로 생각하기", 즉 자율을 요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